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르완다 내전 (문단 편집) == 르완다 학살 이후 == 피난을 떠난 후투족들은 키갈리에서 서남으로 30km 떨어진 임시정부의 잠정 수도 기타라마로 가거나 서북부의 국경을 넘어 [[콩고민주공화국]] 등지로 피난했다. 피란 중 후투족 난민이 3,000,000명 발생했고 식량 부족과 [[콜레라]] 등 전염병으로 많은 피난민이 죽었다. 또한 이 피난민들 사이에 르완다 학살 사건 때 주도하는 역할을 했던 후투족 민병대원들이 섞여서 난민촌을 병영화시켰다. 이것은 내전이 종결된 후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옛 이름은 자이르) 간의 국경 분쟁 원인이 되었으며 1998년에 일어난 아프리카의 '''[[세계 대전]]'''이라는 별명이 붙은 '''[[콩고 전쟁#s-3|2차 콩고 전쟁]]의 불씨'''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근본 원인은 르완다가 내부 혼란 상황에서 콩고민주공화국의 불안정화를 의도하여 외부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것이었지만. 한편 RPF는 7월 말에 전투 중지를 선언했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자 후투족을 향한 사사로운 보복을 금지시켰다. 후투족 난민은 1996년 말과 1997년 초에 르완다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수도 키갈리에 있는 호텔 밀 콜린스의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Paul Rusesabagina)는 난민 1,200여 명을 100일간의 학살 속에서 보호하는 업적을 이루어냈으며 이후 [[호텔 르완다]]라는 영화로 각색되었다. [[피그미]]라 불리는 트와(Twa)족은 이 전쟁통에 애꿎게 3만 명 중 1만 명(전체의 '''1/3''')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 트와족이 학살되었다는 것 때문에, 후투와 투치의 민족 문제보다 경제 문제가 더 큰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실제로 지방에서의 학살은 대부분 마을 사람들 간, 심지어 친족들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왜냐하면 '''학살 뒤에는 죽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재산(농사 지을 땅, 가축 등)의 분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르완다 학살을 [[맬서스 트랩]]의 극단적인 형태로 보는 입장도 있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최고 인구 밀집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인구밀도 320명/km2 (27위)] 사실 르완다에서의 그것과 비슷한 시기에 '''[[부룬디 내전|부룬디에서도 대학살이 벌어졌다.]]''' 차이가 있다면 르완다에서는 후투족이 투치족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면, 부룬디에서는 후투족 극단주의자들의 학살을 시작으로, 투치족 군대가 보복하는 피의 보복전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부룬디는 이미 70년대에 투치족 군부에 의해 후투족 200,000명이 학살되었는데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250,000명 이상이 다시 서로 학살로 죽어 나갔다. 그 때문에 르완다와 부룬디의 학살로 죽은 사람의 수를 합하면 적게 잡아도 1주일 내에 1,000,000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이것은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 학살과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파키스탄인들의 학살에 이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있었던 학살 중 제 3위에 해당한다. 이 학살 이후,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성평등한 나라가 되었는데, 내전과 학살로 남성 국민들이 죄다 죽어나가는 바람에 여성이 경제생활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 여성들의 발언권이 강해졌고, 내전 종식 이후 집권한 파스퇴르 비지뭉구 전 대통령과 그 뒤를 이은 폴 카가메 현 대통령이 여기에 호응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사회문화적으로는 가부장적인 성차별이 심하게 남아있다. || [[파일:르완다 국기(1962-2001).svg|width=100%]] || [[파일:르완다 국기.svg|width=100%]] || || 2001년까지 사용된 국기 || 현재 국기 ||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 르완다의 국기도 교체되었는데, 이전 국기에 새겨진 빨간색이 내전 당시의 유혈 학살을 연상한다는 것과 분노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국기에 대한 변경 및 수정 여론이 커져 2001년 현재의 국기로 교체되었다. 다만 르완다와 비슷하게 후투족과 투치족의 종족 갈등이 내전으로 폭발하였고, 내전 당시 학살과 전쟁범죄로 피를 흘렸던 아랫나라 [[부룬디]]는 현 자국 국기에 빨간색이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전 종식 이후 내전 당시의 학살을 연상시킨다며 빨간색이 새겨진 현재의 자국 국기를 르완다처럼 새로 교체해야 한다는 국내의 여론이나 정부 차원에서의 국기 변경 움직임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르완다 정부는 학살에 연루된 프랑스 관리들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32&aid=0002746609|#]] [[2017년]] [[3월 20일]], [[바티칸]]을 방문한 르완다 대통령 [[폴 카가메]]와 만난 교황 [[프란치스코(교황)|프란치스코]]는 르완다 내전 당시 학살에 가담한 로마가톨릭교의 일부 성직자의 잘못을 사과했다. [[http://v.media.daum.net/v/20170321200135073|#]] 2020년 5월 16일 르완다 대학살의 배후이자 자금줄인 펠리시앵 카부가[* 이 인물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원티드: 세계 최악의 수배자들' 2화에서 소개된다. 다큐 제작 중에 체포되어 마지막에 실제 체포 장면이 나온다.]가 도피 25년 만에 프랑스에서 체포됐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1612921|#]] 유엔 전범재판소 잔여업무처리기구(MICT, Mechanism for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s)로 이송되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916535?sid=104|#]] 2020년 8월 31일 [[호텔 르완다]]의 주인공 폴 루세사바기나가 르완다 당국에 테러 혐의로 체포됐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850541?sid=104|#]] 루세사바기나의 [[폴 카가메]] 정권 비판 때문에 표적이 된 것으로 보인다. [[두바이]]에서 납치되어 르완다로 이송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1855888|#]] 가족이 벨기에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859709?sid=104|#]] 결국 기소되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881084?sid=104|#]] 루세사바기나가 자신이 체포된 것은 르완다 당국에 속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891430?sid=104|#]] 폴 루세사바기나가 유죄 선고를 받았다가. [[https://m.yna.co.kr/view/AKR20210920037000079?section=international/all|#]] 2023년에 석방되었다. 2023년 9월 19일. 르완다 대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르완다의 전직 고위 관리가 프랑스에서 체포돼 기소됐다.[[https://m.yna.co.kr/view/AKR20230923042500081?section=international/all|#]] 10월 3일에는 전직 육군 장교 피에르 클라베르 카랑와가 1994년 4월 무기나 대량 학살에 가담한 혐의로 네덜란드에서 체포되었다.[[https://nos.nl/artikel/2492719-oud-legerofficier-rwanda-opgepakt-in-ermelo-in-verband-met-genocide|#]]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